세시간을
차로 달려 휴스턴영사관에 다녀왔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후 부친명의로 있던 임야에 대한 상속재
산분할 협의서 작성을 영사공증을 해서 고국의 등기소에 보내야 했습니다.
세형제중
둘째동생만 한국에 있고 막
내동생도 미국에 나와 살고 있으니 집근처 양로원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까운 거리에서 돌보고 있는 동생에게
소유권을
넘겨주기 위해서입니다.
곁에
있어야 자식노릇을 할텐데 둘다 타국에 나와있으니 불효만 했습니다. 다
행히
하나가 부모님 곁에 남아서 우리 몫까지 대신 효도해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아프면
병원에 모
시고 가고 주말마다 바쁜 중에 손자손녀들 데리고 가서 보여드리고 밥도 같이 먹고 나들이도 함께 하고 거동이 불
편해지기 시작한 어머니를
끔찍히도 챙겨온 동생이라서 생각할 때마다 고마움에 마음이 먹먹해 집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유산을 그동안 부모님 돌보느라 고생많았던 동생에게 다 주기로 한 것입니다.
남은
생에 그리운 사람 얼
굴보고 목소리 듣고 밥한끼 함께 먹을 수 있는 소소하고 확실한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종종
회의참석차
고국에 갈때마다 공항에 나와 맞아주는 동생얼굴에도 조금씩 주름이 돋는 것을 보니 필자 얼굴도 그렇게 세월이
쌓이고 있을 것 같습니다.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뵐때마다 건강할때 자주 나와보지 못한것이 얼마나 죄송한지..
떠나올때 휠체어에 앉아 언제 다시 보게될지 모를 아들의 뒷모습을 향해 힘없는 손을 흔들고 계시는 어머니 모습
에 늘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사랑이
이렇게 아리고 시릴 수도 있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부모님
모
두 건강하게 지내시는 것만으로도 늘 든든하고 위로가 된다는 걸 이제야 뼈저리게 실감합니다.
아버지께서
돌아
가신지 벌써 이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리해야 할 일이 남았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아버지의 이름이 서류
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게 됩니다. 전화도
없어지고 통장도 카톡도 이메일도 차례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리움만 곁에 남습니다.
눈으로
보지 않고도 사랑하는 법에 어느덧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습니다.
부모자녀로
만나고 형제자매로 만나 험한세상을 함께 살아온 가족은 반가움과 그리움으로 묶입니다.
그리고
보는
것만으로도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만들어내는 샘이 됩니다. 존재
자체가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만나면
반갑고 떨어지면 그립습니다. 이
반가움과 그리움이 가족을 설명하는 감정입니다. 부모에
대한 애틋함이 이제는
형제에 대한 애틋함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어린시절
한 부모 아래서 함께 자라고 성장한 그 세월이 점점 더 진
한 기억으로 살아납니다. 부모님의
시간이 짧아지면서 형제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졌습니다. 옛어른들이
부부
는 원앙으로, 형제는 기러기로 비유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철새가 긴 여정을 줄을지어 함께 날아가는 형상이 긴 인
생여정을 함께 줄지어 살아가는 형제의 모습과
많이 닮아서일 것입니다.
성장하여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긴 인생
여정을 달려오는 동안 어느덪 세파에 맞서는 동지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가정을
지키고 자식을 세우는 일
에는 그 짐의 무게가 같았기 때문입니다. 시편119편이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
운고..” 하고
노래했습니다.
기러기같이
함께 날개를 펼치고 지금까지 잘 날아올 수 있는 형제를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리며 모두 건강하게 오랫동안 멋진 인생항해를 함께 해 갈 수 있도록
건강주시기를 소원하게 됩니다.